'규칙의 의미와 역사'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8.07.02 Goal Line Technology, GLT 골라인 판독 기술
  2. 2012.09.23 Assistant Referees 부심
  3. 2012.09.23 Assessor 평가원
  4. 2012.07.29 Assault 폭행
  5. 2012.07.22 Artificial Surface 인공 잔디 표면
  6. 2012.07.16 Kick-off 킥오프
  7. 2012.07.16 센터 서클 Center-Circle
  8. 2012.07.12 Captains 주장
  9. 2012.07.12 Armbands 완장
  10. 2012.07.12 Appealing 항의하기

 Goal Line Technology, GLT, 골라인 판독 기술

 

         주심은 골의 유일한 판정관이다. 그러나 때때로 볼 전체가 골 라인을 넘어서 골포스트 사이를 지나갔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별도의 골 판정원goal-judges을 두자는 요구가 1893년에(골네트가 일반화되기 전) 최초로 있었으나 추가 심판에 대한 의견이 실행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2005년 FIFA 17세 이하 세계 챔피언십World Championships에서, 볼 전체가 골라인을 넘었을 때 주심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내장 칩을 가진 볼을 사용하는 전자 시스템의 실험이 있었다. 주심에게 즉각적인 정보를 제공하자는 개념이었다.

 

        여러 해를 걸쳐 골라인 기술에 관해 네 가지 주요 유형의 문제가 있어왔다.

(i) 골키퍼 또는 수비수가 골라인 가까이에서 볼을 쳐낸다.

(ii) 볼이 크로스바 아래쪽을 맞고 골라인 가까운 곳으로 튀긴다.

(iii) 볼이 네트, 기둥, 또는 네트 뒤에 벽을 맞고 튀어나온다.

(iv) 볼이 네트에 난 구멍으로 나간다. 


         올드 트패퍼드Old Trafford에서(2005년 1월) 어느 골라인 사건 이후 골라인 기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경기 종료 직전, 페드로 멘데스Petro Mendes(토트넘 핫스퍼Spurs)가 골라인에서 10야드 정도 나와 있던 골키퍼 로이 캐롤Roy Carrol(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를 향해 장거리 로빙 슛을 시도했다. 캐롤은 급히 뒷걸음질 치다 가슴에서 볼을 잡으려 했다. 잡았다 놓친 볼은 골키퍼 뒤쪽으로 떨어졌고, 골키퍼는 볼을 끌어 당겼다. 텔레비전의 재생 화면을 봐서는 캐롤이 볼을 다시 잡았을 때는 골라인을 1야드 이상 넘었다. 주심은 중앙선 근처에 있었고, 부심은 (골에서 30야드 이상 떨어진) 최종 수비수와 동일 선상의 위치로부터 터치라인을 따라 달려야 했다. 골은 주어지지 않았다.


         같은 시즌에 루이스 가르시아Luis Garcia의 슛을 첼시Chelsea의 갈라스Gallas가 걷어냈을 때 리버풀Liverpool에 골이 주어졌다(2005년 3월). 매우 복잡한 사건이었다. 골키퍼 체흐Cech(첼시)가 바로시Baros(리버풀)에게 반칙을 하고 그의 골득점 기회를 방해한 것처럼 보였으나 루이스 가르시아가 흘러나온 볼로 향했다. 어드밴티지가 주어졌고, 루이스 가르시아의 슛이 걷어내졌으나 부심은 골을 인정하는 기신호를 했다. 체흐는 더 이상 리버풀의 확실한 골득점 기회를 방해하지 않았으며 그저 경기장 위에 머물렀으나 그 시합을 중계하던 텔레비전 방송국이 제공한 어떠한 카메라 각도도 부심의 시야만큼 좋지는 않았다. 후에 다양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볼 전체가 골라인을 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여러 각도의 화면들을 보여줬다. 그러나 모든 화면 구도가 고려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심판들이 시야에 있어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스코틀랜드Scotland의 코너킥 이후 노르웨이Norway의 골 에어리어에 수비수들이 모여 있는 동안, 볼이 땅에서 1피트 정도 위에 있을 때 아이버슨Iverson(노르웨이)이 골라인에서 멀리 볼을 차냈다(2004년 10월). 재생 화면은 볼 전체가 골라인을 넘지 않았음을 보여줬으나, 중앙선에서 보고 있던 스코틀랜드 감독 베르티 포크츠Berti Vogts는 골임을 확신했다. 그의 항의로 주심과 다툼이 있었다. 포크츠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시각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사람들은 골라인 전체를 볼 수 있으며 (케네스 월스텐홈Kenneth Wolstenholme[[각주:1]]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볼은 실제로 라인 위 공중에 떠있다. 반면에 어떤 심판들은 경솔하다 할만큼 골을 주고 싶어 하는데, 웨스트햄West Ham에서 골키퍼 슈워처Schwarzer(미들스브로Middlesbrough)가 골라인 위에서 공을 더듬고 있을 때 당시 심판이 그 좋은 예이다(2005년 10월).


         두 번째 논쟁의 부문은 아마도 가장 극적인 부문일 것이다. 볼이 크로스바를 맞고 아래로 튀기는 경우이다. 눈 깜짝할 순간의 행동은 눈 깜짝할 순간의 판정이 필요하다. 노츠Notts가 1891 FA컵준결승 재경기에서 선덜랜드Sunderland를 2-0으로 이겼을 때, 볼이 크로스바를 맞고 아래로 튀겼을 때 중앙선 위에 있던 주심은 첫 번째 골을 선언했다.

         전설적인 한 사건이 1966 FIFA 월드컵World Cup™ 결승전에서 2-2 상황에서 발생했다.[[각주:2]][[각주:3]] 허스트Hurst(잉글랜드)가 돌아서면서 쏜 슛이 서독 골에 크로스바의 아래쪽을 맞고 밑으로 튀었다. 러시아 선심은 골을 선언했으나, 그는 골라인에서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다른 경우로는, 주심이 "play on"을 외쳤을 때 골이 주어졌어야 했음을 후에 확인할 수 있다. 큰 경기 중에서 예를 들자면,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미첼Michel(스페인)이 쏜 슛(1986년 6월)[[각주:4]][[각주:5]],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문테아누Munteanu(루마니아)의 슛(1996년 6월), 그리고 1997 FA컵 준결승에서 미들스브로와 경기에서 하워드Howard(체스터필드Chesterfield)의 슛[[각주:6]]등이 있다.

     스튜어트 피어스Stuart Pearce(잉글랜드)의 장거리 프리킥이 프랑스의 크로스바의 아래를 때렸으나 골라인을 넘지는 않았다(1992년 6월). 잉글랜드 감독 그레이엄 테일러Graham Taylor는 1966년 러시아의 선심이 했던 판정을 보게 되기를 기대하며 터치라인을 보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세 번째, 볼이 들어오거나 나간 곳에 관한 사건들이다. 1908년,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와 1-1로 비겼다. 잉글랜드의 Windridge가 득점한 골은, 달리며 쏜 슛이 골 그물의 지붕을 들어 올린 후 경기장 안으로 다시 튀어 들어왔다. 스코틀랜드 선수들은 계속 플레이를 했으나 주심은 골을 주었다. 그러나 웨스트브롬West Brom은 블랙풀Blackpool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골이 인정되지 않았다. 주심은 볼이 크로스바에 맞았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골 네트에 맞고 튕겨 되돌아온 것이었다(1908-1909).


         몇몇 경기장에는 골 네트 바로 뒤에 경계 벽이 있다. 네트가 너무 느슨한 경우, 볼이 벽을 맞고 날라 온다. 노리치 시티Norwich City의 초창기 홈이었던 네스트Nest에서 있었던 논쟁의 골은 잘 알려져 있다. 캔비 아일랜드Canvey Island에서 럼스덴Lumsden(칼라일Carlisle)이 패널티킥을 찼고, 볼이 골네트 뒤에 있던 보드를 맞고 패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튀어나왔다(2005년 3월). 얼마간의 혼란 후 주심은 골을 주었다.

         1938년에 허더즈필드 타운Huddersfield Town이 맨체스터 시티Manchester City에게 1-0으로 이긴 경기에서, 알렉 허드Alec Herd(맨체스터 시티)의 슛이 뒷기둥을 맞고 되돌아왔고 주심은 볼이 크로스바를 맞았다고 생각했다.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졌고 강등됐다. 같은 일이 1969-70 시즌에 아스톤 빌라Aston Villa에서 일어났으며 1969-70 시즌에 강등됐다. 그 해 아스톤 빌라는 레스터 시티Leicester City와의 경기에서 뒷기둥을 맞췄다. 또한 쿨라이브 알렌Clive Allen(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는 코번트리 시티Coventry City에 대해 골을 넣었음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화면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했었다(1980년 9월).


         골라인 사건의 마지막 형태는 볼이 골대의 안쪽으로 혹은 바깥쪽으로 지나갔는지가 확실하지 않을 때이다. 알란 허드슨Alan Hudson(첼시)의 슛이 입스위치Ipswich의 네트의 밖으로 뒷기둥을 때린 후 바닥이 너덜너덜하고, 주심이 ‘구멍들 안에 구멍들’이라 묘사했던 네트를 뚫고 들어갔다. 몇몇 주심들은 즉시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그들의 가방 안에 끝을 넣고 다닌다.


FA 위원회Council은 1891년 2월에 골네트의 사용을 승인했으나 그 비용이 더 내려가기까지는 강제화할 수는 없었다. 골네트는 국제 경기에 빠르게 도입되었다(IFAB 1895년). 당시 어느 스코틀랜드 컵 결승전은 - 레이스 로버스Raith Rovers와 5th King's Rifle Volunteers의 경기(1894-95) - 홈 팀이 골네트를 제공하지 못한 이유로 재경기를 갖게 됐다. 첫 경기에서 레이스는 6-3으로 이겼으나 재경기에서는 4-3으로 졌다.


         골네트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역 경기를 위한 계획에 홈팀 선수들을 위한 불멸의 지시immortal instruction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와 70년대였다: "네트의 설치를 초기에 보고하라".

     네트와 골라인으로 둘러싸인 지역은 기술적으로 경기장 안이 아니다. 어느 선수가 이 구역 위에서 다른 선수를 때린다면 퇴장은 되겠지만 (볼이 인플레이일지라도) 프리킥이나 패널티 킥은 주어지지 않는다.

     

twitter : @rivv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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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50, 60년대 BBC TV의 축구 해설자였다. 잉글랜드가 우승한 1966년 월드컵 결승전의 해설을 했었다. http://en.wikipedia.org/wiki/Kenneth_Wolstenholme [본문으로]
  2. 역주: http://youtu.be/Dau4icemNnE?t=1m [본문으로]
  3. 역주: http://youtu.be/mvxVGMOgmcU?t=3m41s [본문으로]
  4. 역주: http://youtu.be/ZUWGiyww3Vo?t=50s [본문으로]
  5. 역주: http://youtu.be/BYCwnaqHVpE [본문으로]
  6. 역주: http://youtu.be/lVuMYS8AMVg?t=4m1s [본문으로]
Posted by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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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istant Referees 부심


         1996년까지 부심은 선심으로 불렸다. 이름의 변화는 부분적으로는 그 수가 증가하는 여자 심판들의 요구에 응한 것이며, 한편으로는 선을 따라 달리는 심판들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기 위함이었다. "선심은, 기술적으로는 부심이다." W D Murdoch가 1952-53 소년들을 위한 FA 책(FA Book for Boys)에 썼던 글이다.

선심이란 용어는 1891년 이후에 나타났는데, 이전에는 주심은 옆 선에서 운동장 안까지 움직이고 두 명의 심판원(umpire)은 운동장에서 운동장 주위를 움직였다. 1890년대 축구 리그의 선심들은 클럽의 관계자들이었으며, ‘어웨이 팀 선심들’은 홈 관중으로부터 욕설을 받기 십상이었다. Derby County의 Charlie Holloway는 니커보커(knickerbocker)[각주:1]를 입고 선을 따라 달렸는데 Burnley의 팬들이 새총으로 그의 다리를 쏘아댔다. 주심은 경기를 중지하고 그를 구해내야만 했다.

         중립의 선심이 1900년 즈음에 도입됐다. 셰필드 유나이티드Sheffield United와 셰필드 웬즈데이Sheffield Wednesday가 FA 컵 재경기에서 만났는데, 두 명의 웬즈데이 선수가 퇴장 당했다(1900년 2월). 주심 존 루이스John Lewis는 두 번째 반칙은 보지 못했으나 중립 선심 중 한 명이 제공한 정보에 의하여 퇴장 결정을 내렸다.

         클럽들은 홈 경기에서 선심들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Lovick는 1920년대에 쓴 교범에서 주심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했다: "처음 5분 혹은 10분 동안 당신들의 선심들 각각에게 주목하고 경기의 나머지 시간동안 그들을 얼마나 신뢰할 것인지를 판단하라."

         사회인 축구에서 부심은 종종 팀의 관계자이거나 교체 선수이다. 대부분은 그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만 가끔  역할의 충돌을 겪는 사람도 있다: "이봐, 그것밖에 못해. 거기 뒤쪽에서 어슬렁거리지 말고, 선이 안 보이잖아."

         프로 축구에서 중립 부심은 점점 더 많은 책임감을 갖는다. 부심은 볼이 인 플레이인지 아웃 오브 플레이인지를 지시하고, 재시작 시 어떤 팀에게 볼의 소유권이 있는지를 알려준다. 부심은 오프사이드를 평가하고, 주심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을 경우 필드 지역에서 벌어지는 반칙과 불법행위를 주시한다. 부심은 선수 교체를 도와주고, 페널티 킥에서 일부 책임을 지며(예를 들면, 골키퍼의 발을 지켜보는 등의), 골 여부를 위하여 볼이 골라인을 넘었는지 여부를 지켜본다. 마지막 세 가지 항목은 2000년에 규칙에 추가되었는데, 이미 많은 주심들은 그들의 부심들에게 이처럼 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또한, 2000년부터 부심은 거리 침입의 상황을 돕기 위해 운동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선심의 본래 임무는 볼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간 곳을 가리키고, 그 다음 한쪽으로 서서 드로인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Pickford는 심판에 관한 그의 초창기 책에서 이 점을 명확히 서술했다:

실제로 선심에게는 터치라인을 감시할 임무가. 주심에게는 골라인과 골 위치를 감시할 임무가 위임된다. 이는 업무의 효율적인 분할이긴 하나, 강제적인 것은 아니다. 선심은 골라인을 넘어가는 공을 적극적으로 지켜봐야 하며 이는 필요한 경우 신호나 협의를 통해 주심을 도울 수 있기 위함이다. 선심은 가능한 골의 심판관처럼 행동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한 명의 선심은 운동장 절반의 터치라인을 따라 주로 움직여야 하며, 또 다른 선심은 반대쪽에서 움직인다.

         부심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반즐리Barnsley의 한 수비수가 터치라인 가까이에서 Simon Sturridge[각주:2](스토크)에게 태클을 하면서, 달리고 있던 선심을 걸어 넘어뜨렸다(1996년 3월). Sturridge의 크로스로 Sheron(스토크)이 골을 넣었다. 반즐리의 수비수들은 오프사이드를 주장했지만 선심은 여전히 넘어져 있을 뿐이었다.

         일부 주심들은 선을 따라 달리는 것이 주심을 보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며, 2002년 FIFA 월드컵™에 관한 공식적인 보고서에 의하면 부심이 주심보다 더 많은 실수를 했다고 한다.[각주:3]

fwc_korea_japan_2002_a_part1_265.pdf

부심에 있어 기본적인 도전은 진흙이나 모래투성이의 터치라인을 따라 게걸음으로 전력 질주하면서 팔을 쭉 편 채로 깃발을 내린 채 잡고 있는 동안 내내, 한쪽 눈은 볼에 두고 한쪽 눈은 파울 및 볼과 상관없는 사건들을 평가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그리고 세 번째 눈은 오프사이드 위치를 판단하기 위해 수비선 상에 유지하는 것이다.

         부심은 전력 질주 중에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선수를 보고서 갑자기 멈춰 설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 부심은 차려 자세를 취하고 기를 높이 올린다(그 선수가 적극적으로 플레이에 관여했다면). 주심은 그들의 부심이 주는 신호들을, 비록 그 신호들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인지한다.

         선을 따라 달리는 것이 현재는 전문적인 일로써 인지된다. 주심들이 처음으로 1년 동안 갑자기 선심으로써 활동했던 것이 예사였다. FIFA 주심들은 주요 시합 전에 그들의 기술을 되살리기 위해 현지 시합들에서 선을 달리는 것을 연습해야만 했었다. 이후 (1986년 마라도나의 '신의 손' 골과 같은 사건들 후에) 높은 수준의 시합을 위해서는 경험 많고 숙련된 부심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중립 부심들은 보통, 한 팀의 라이트 윙에서 다른 팀의 라이트 윙으로 바꾸면서, 양쪽 진영에서 같은 팀의 수비를 따라 달린다. 그리고 클럽 소속 선심은 보통 자신의 팀의 수비를 따라 움직인다. 중립 부심들은 경고, 선수 교체, 퇴장 및 골의 기록을 하게 된다. 제 4심의 있기 이전에는, 그 시합의 심판이 경기 중 부상을 당할 때 선임 선심이 인계하곤 했다. 몇몇 대회에서는 여전히 같은 상황이다.

         중립 부심들은 또한 주심과 동일한 장비들을 휴대한다. 선심의 기는 전통적으로 홈 클럽이 제공했으나, 많은 심판들이 지금은 자신의 기를 휴대한다. 클럽 사무관secretary에게의 초기 FA 지시에는 '엷은 색의 기'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었다. 기는 손수건보다 더 보기 좋았다. 따라서 더 명확한 신호를 부심에게 줄 수 있었다. 기의 길이는 보통 8 인치(손잡이 포함)를 유지해 왔으며, 부심들은 달리는 동안 허리 아래의 높이로 몸 옆에 붙인 채로 기를 펼친 채로 준비하는 법을 안다. 절대 손잡이 주위에 기를 감지 마라!

         깃발이 선심의 손잡이 끝으로 빠져 경기장 위로 날아간 수많은 예가 있다. 어느 선수가 씩 웃으며 빠진 깃발을 돌려주며 농담 한 마디 할 수도 있겠다: '이게 당신의 콧수건이오? lino[각주:4]?'

         밝은 색의 기가 1946년 빌라 파크Villa Park에서 최초로 시도되었고, 야간 조명 시합들 도중 선심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주심들의 불평이 있은 이후 1972년 밝은 색의 기를 사용한 시험들이 있었다. 레이턴 오리엔트Leyton Orient와 블랙풀Blackpool 간 경기의 주심은 경기를 중지하고 한 관중에게 관중석 안으로 좀 더 뒤로 이동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는 그 관중의 셔츠가 선심의 기와 혼동된다는 이유였다(1992년 8월). 팬들의 레플리카replica 셔츠의 구입에 따라 적당한 깃발의 색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으며, 밝은 색의 바둑판 무늬 깃발이 더욱 보편화되었다.

         부심은 주심의 요청 시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부심은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이는 오직 주심만의 일이다.

         너무 많은 간섭을 하는 부심은 주심에 의해 퇴장될 수 있다. 옥스퍼드셔 선데이 리그Oxfordshire Sunday League 시합 도중 개리 파커Garry Parker (래스터 시티Leicester City)는 부심 업무를 수행하는 중 주심에게 반칙과 욕설적 언어를 사용한 이유로 750 파운드의 벌금에 처해졌다(1998년 2월).

         부심을 준비하지 못한 지역 클럽에게 벌금이 과해질 수 있다. 부심이 없는 것보다야 누구든 있는 것이 낫다. 한 Lewes and District Sunday League 시합에서, 어느 클럽 소속 부심은 목발을 짚고 절름거리며, 간신히 깃발을 들었다.

         시합 중 부심이 부상을 입으면 어떻게 되는가? 리버풀Liverpool과 울브스Wolves[각주:5] 경기에서 선심이 근육 부상을 입었을 때 지역의 주심 한 명이 들어왔고(1970년 10월), 첼시Chealsea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Sheffield United의 교체선수 David Staniforth는 부상당한 선심을 대행했다(1973년 2월)

         아스널Arsenal과 리버풀Liverpool 간 시합 후 20분에 한 선심의 무릎을 접질렸을 때에도 또한 교체가 필요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방송 이후 3명의 응답자가 있었다 - 경험이 없는 주심, 60대의 전직 주심, FA 코치 자격으로 경기의 규칙에 대해 연구해 왔던 TV 전문가이자 전 선수 출신인 지미 힐Jimmy Hill. 15분의 지연 후, 경기가 재개됐을 때 힐Hill이 터치라인을 달리고 있었다.

         1999년과 2000년에 마이크와 버저에 대한 성공적인 시험에도 불구하고, 주심들은 계속하여 깃발 신호 체계를 운용하여 그들의 부심들을 신뢰한다. 부심은 오프사이드가 발생한 곳과 나란한 곳에서 공중을 향해 곧게 기를 펴서 잡고 있는 것으로 오프사이드를 표시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간접 프리킥을 위해 볼이 위치해야할 곳을 지시할 수 있다. 부심이 또한 신호할 수 있는 것들에는, 규칙의 위반(기를 흔든 후 위반한 티의 골 방향으로 기를 가리킨다), 코너킥(가장 가까운 코너 아크를 향해 가리킨다), 골킥(골라인에서 6 야드 떨어진 곳에 위치를 잡고 경기장 안쪽들 향해 가리킨다), 골(중앙선을 향해 뛰어가며 엄지손가락을 올리거나 중앙선 쪽을 팔로 가리킨다), 드로인(기를 흔들고 드로인의 방향을 신호한다), 그리고 교체(기를 두 손으로 잡은 채로 두 팔을 든다)가 있다. 교체는 중앙선에서 이루어진다. 경기 중단 시점에서, 부심은 중앙선으로 이동하고 기를 올린다. 한 선수가 경기장을 나가고, 교체 선수가 주심의 신호에 따라 들어온다. 부심은 교체 선수의 신발을 점검한다.




         페널티 킥을 위한 신호 또한 있다. 2004년 9월 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에서 한 부심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라이트-필립스Wright-Phillips(맨체스터 시티Manchester City)가 밀린 것을 봤다. 주심보다 볼에 더 가까이 있었던 부심은 즉시 기를 흔든 후에 기를 가슴에 가로 질러 위치했다.

         코너킥에서, 1980년대 초기에 선심들은 골라인 위, 코너 플랙corner-flag에서 약 15 야드 떨어진 곳에 서 있곤 했다. 2000년대 들어 코너 플랙 옆에 서는 것이 더욱 일반화되었는데, 이곳이 볼의 인 플레이 여부를 판단하기에 더 좋은 위치이다. 부심들은 드로인 신호 시 손을 엇바꿈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신호하게 되었다(1950년대에 몇몇 선심들은 오른손으로 기를 잡은 채로 머리 넘어 애써 잡고 있다 보면 마치 곡예사처럼 보였다).

         몇몇 주심들은 그들의 부심들로부터 감정적인 지원을 받기도 한다. 언젠가 한 주심이 인기 없는 페널티 판정을 내리고는 성난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였다.

"선심하고 얘기해 봐요, 주심", 수비수가 말했다.

주심은 터치라인으로 달려가서는,

"시계 갖고 있어요?" 라고 물었다.

"네", 부심은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심은 페널티 마크로 뛰어 돌아와서는 확신에 차서 가리켰다.

         부심은 주심의 가장 좋은 친구다.


역주: 관련 규칙

<경기 규칙>

규칙 4. 선수의 장비

색상

    • 두 팀은 양 팀 간 주심 및 부심과 구별되는 색상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 각 골키퍼는 다른 선수들, 주심, 부심과 구별되는 색상을 입어야 한다.


규칙 5. 주심

권한과 임무

주심은

...

    • 부심 또는 대기심판과 협조하여 경기를 관리한다.

...

    • 주심이 목격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 부심의 충고에 따라 처리한다.


주심의 결정

플레이와 관련된, 득점 여부 그리고 경기의 결과를 포함한 사실에 대한 주심의 판정은 최종적인 것이다.

주심은 경기를 재개하지 않았거나 경기를 종료시키지 않았을 경우에 한하여 결정의 잘못을 깨달았거나 부심 또는 대기 심판의 조언에 따라 결정을 바꿀 수 있다.


국제축구평의회 결정 사항

결정 1

주심(또는 관련되는 부심, 대기심)은 다음 사항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

    • 수, 임원, 관중이 당한 부상

    • 재산상 발생하는 손해

    • 기규칙의 규정에 의거한 결정사항 또는 경기진행 및 운영에 요구되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된 사항이 개인, 클럽, 회사, 협회 또는 기타 단체에 끼치는 손실


규칙 6. 부심

임무

부심은 2명이 임명되며, 부심의 임무는 주심의 판정에 복종하고 다음의 사항을 지적하는 것이다:

    • 볼 전체가 경기장을 넘어 갔을 때

    • 어느 팀이 코너킥, 골킥 또는 스로인을 할 권리가 있는지

    • 선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을 때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경우

    • 선수 교체가 요청될 때

    • 불법 행위 또는 기타 사건이 주심의 시야 밖에서 발생할 때

    • 주심보다 부심이 반칙이 더 잘 보이는 위치에 있을 때 (이는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 발생한 반칙을 포함한다)

    • 페널티킥에서, 볼이 킥이 되기 전에 골키퍼가 골라인을 벗어나 움직이는지 여부 그리고 볼이 골라인을 넘었는지 여부


조력

부심들은 경기 규칙에 일치하여 경기를 관리하는 주심을 역시 조력한다. 특히, 부심들은 9.15m 거리 조절을 돕기 위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부당한 간섭이나 부적절한 행동의 경우, 주심은 그의 임무에서 부심을 해임시킬 것이고 그리고 해당 기관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대기 심판과 예비 부심

  • 대기 심판은 대회 규정 하에 임명될 수 있으며, 만일 예비 부심이 임명되지 않았고, 세 명의 심판 중 어느 한 명이 계속 할 수 없다면, 심판 활동을 대신할 수 있다. 대기 심판은 항상 주심을 돕는다.

  • 조직 위원회는 대회 시작에 앞서 주심이 계속할 수 없을 경우, 대기 심판이 주심을 인계 받을지 또는 선임 부심이 주심을 인계 받고 대기 심판이 직무를 대신할 지 여부를 명백하게 규정해야 한다.

  • 대기 심판은 주심에 의해 요청된 것처럼 경기 전, 중 그리고 후의 행정적 임무를 돕는다.

  • 대기 심판은 경기 동안 선수 교체 절차를 도울 책임이 있다.

  • 대기 심판은 교체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에 교체 선수의 장비를 검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만일 교체 선수의 장비가 경기 규칙에 맞지 않다면, 대기 심판은 주심에게 알린다.

  • 대기 심판은 필요시 볼의 교체를 관리한다. 만일 경기용 볼이 경기 도중에 교체되어야 한다면, 대기 심판은, 주심의 지시에 따라 다른 볼을 제공하고, 지연을 최소화 시킨다.

  • 대기심은 경기규칙에 의해 주심이 경기를 운영하는 과정을 돕는다. 그러나 주심은 경기와 관련된 행위에 대한 모든 결정 권한을 갖는다.

  • 경기 후, 대기 심판은 주심과 부심의 시야 밖에서 발생하였던 불법 행위 또는 다른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해당 기관에 반드시 제출하여야 한다. 대기 심판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주심과 부심에게 반드시 조언을 하여야 한다.

  • 대기 심판은 기술 지역에 있는 팀임원에 의한 무책임한 행동을 주심에게 알릴 권한을 가지고 있다.

  • 예비 부심은 대회 규정 하에 역시 임명될 수 있다. 예비 부심의 유일한 임무는 계속할 수 없는 부심을 대신하거나 또는 필요하다면, 대기 심판을 대신하는 것이 되어야한다.


<경기 규칙의 해석과 심판을 위한 지침>

규칙 3. 경기자의 수

교체 절차

...

    • 부심은 선수 교체가 요청되었음을 신호한다.


규칙 5. 주심

권한과 임무

...

관중에 의해 던져진 물체가 주심 부심 중 한 명 또는 선수 팀 임원을 맞춘다면, 사건의 심한 정도에 따라 경기를 계속, 중단 또는 포기할 수 있다. 주심은, 모든 경우에서, 사건을 관련 기관에 보고하여야 한다.

...

주심이 어떤 이유 때문에 일시적으로 활동이 불가능하다면, 부심의 관리 하에 볼이 다음 아웃 오브 플레이가 될 때까지 계속될 수 있다.


부상 선수

...

    • 부심 또는 대기 심판이 선수가 복귀 준비됐음을 확인 했다면, 주심은 부상 선수의 경기장 입장을 허락할 수 있다.


주심을 위한 지침

인 플레이 중의 위치 선정

권장 사항

    • 주심과 진행 측 부심사이에 플레이를 두어야 한다.

    • 진행 측 부심은 주심의 시야 내에 있어야 한다. 주심은 넓은 대각선 체계를 사용하여야한다.

    • 플레이 외곽을 향해 머무는 것은 플레이와 진행 측 부심을 주심의 시야에 더 쉽게 두도록 한다.

    • 주심은 플레이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플레이를 관찰하기 위해 충분하게 접근하여야 한다.

    • "관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항상 볼 근처가 아니다.

(편집 중...)


<원문: LOTG @fifa.com, 번역: @kfa.or.kr>


twitter : @rivvier

* 위의 글은 "Ward's Soccerpedia: The Lore and Laws of the Beautiful Game"의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 모든 주석은 역주입니다. 또한 텍스트를 제외한 모든 영상, 그림, 표는 역주입니다.

* 축구 규칙에 관한, 제가 만나본 책 중 가장 환상적이며 영감과 노력이 넘치는 책입니다.

* 의견이나 관련 기사, 동영상을 아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더욱 멋진 글이 될 것입니다.

  1. 역주: 무릎 아래에서 졸라매는 낙낙한 짧은 바지 [본문으로]
  2. 역주: (1969년 12월 9일 출생) 공격수 출신의 잉글랜드 전프로 축구 선수. The Football League에 250 경기 이상 나왔다. http://en.wikipedia.org/wiki/Simon_Sturridge [본문으로]
  3. 역주: 2002 한국/일본 월드컵 기술 보고서, p21 [본문으로]
  4. 역주: 부심의 옛 명칭인 선심(linesman)의 속어. 여전히 널리 일반적으로 쓰인다. [본문으로]
  5. 역주: 울버햄튼 원더러스 Wolverhampton Wanderer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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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essor 평가원

 

         심판들은 어떻게 심판하는가? 1963년 8월에, 작은 글 하나가 Crystal Palace programme에 실렸다: "여러 해 동안 스코틀랜드 리그Scottish League는 공정한 심판 평가원들의 독립적인 위원단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왔으며, 현재 Lancashire Combination평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축구 리그Football League는 언제 행동을 같이 할 것인가? 클럽 보고서에 의한 심판 평가 체계는 명백한 결함을 갖는다."

         평가원은 1969-70 시즌에 잉글랜드에서 최초로 나타났으며, 조직이 점차 더욱 더 정교해졌다. 평가원은 감시자와 조언자로서 역할을 하며 모든 수준의 심판들의 계발을 돕는다. 1972년, 그들은 많은 문제들에 여러 논쟁점에 대한 견해를 요약했다: 규칙과 통제의 적용; 위치 결정 및 건강; 어드밴티지 조항의 적용; 경기 중단과 신호; 그리고 선심(현재의 부심)과의 협력.

         최고 수준의 심판들은 매우 책임감이 강하다. 실로 몇몇 축구 클럽 임원들은 그들이 너무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twitter : @rivvier

* 위의 글은 "Ward's Soccerpedia: The Lore and Laws of the Beautiful Game"의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 모든 주석은 역주입니다. 또한 텍스트를 제외한 모든 영상, 그림, 표는 역주입니다.

* 축구 규칙에 관한, 제가 만나본 책 중 가장 환상적이며 영감과 노력이 넘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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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ault 폭행

 

         2001년 2월 옥스포드에 한 경기의 40분쯤에 Bobby Ahmed(Blackbird Leys)가 골키퍼 Mark Rose (Great Milton)를 공격했던 사건이다. 주심은 Ahmed에게 레드 카드를 제시했다. 그러자 그 선수는 주심을 때리기 시작하더니 땅에 넘어져 있던 골키퍼의 얼굴을 발로 찼다. Rose는 턱뼈, 안와 그리고 코가 부러져 삼일 동안 병원에서 보냈다. Rose는 13개의 뼈나사와 3개의 평판을 삽입했고, 얼굴을 7주 동안 철사로 고정했다. 법정 소송에서, Ahmed는 중상을 입힌 죄로 30개월, 일반 폭행죄로 3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15개월을 복무했다.

         폭행이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가하는 격렬한 공격이다. 축구와 관련된 폭행은 범죄이며 형사 소송을 야기할 수 있다.

         (i) (신체적 흔적이 없는 경우) Criminal Justice Act 1991[[각주:1]]에 의한 common assault일반 폭행,

         (ii) Offences Against Person Act 1861[[각주:2]]에 반하는 actual bodily harm실제적 상해의 원인이 된 폭행[[각주:3]] 및

         (iii) Offences Against Person Act 1861에 의한 중상의 원인이 된 폭행이며, 최고 5년의 금고형을 수반한다.

Criminal Justice Act 1991.pdf

Offences against the Person(ukpga_18610100_en).pdf


         축구의 규칙에는 폭행을 (볼과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을 경우) 난폭한 행위 또는 (볼에 대한 추정적인 도전이 있는 경우) 심각한 반칙 플레이로 인한 퇴장성 반칙으로 분류하고 있다.

         축구 분야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거의 전부가 경기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한다. 어느 미디어의 경고를 쉽게 말하자면, 폭력 장면 뒤에 무엇이 따르겠는가.

         부상을 입힌 반칙으로 프로 선수들이 퇴장 당했을 때, 경찰은 피해자에게 고소하고 싶은 지를 종종 묻는다. 선수들은 보통 거절한다. 예를 들면, Derek McInnes(웨스트 브롬)은 Patrick Suffo(셰필드 유나이티드)의 고소을 거절했는데, Suffo는 McInnes를 박치기를 해서 봉합 수술을 받게 했었다(2002년 3월).

         Duncan Ferguson(레인저스)가 John Mcstay(Raith Rovers)를 박치기했을 때, 주심은 그 사건을 보지 못했으나, 경찰이 compiled a case(1994년 4월).

         일 년 반 후, Ferguson은 폭행죄로 3개월 형을 받았다. 44일 복무 후 석방됐다.

         또 다른 역사적인 소송 사건에는 Andrew Brannigan(Arbroath) 소송이 있는데, 그는 Jim Deakin(Albion Rovers)의 다리를 부러뜨려 퇴장당하고(1986년 12월) 폭행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1987년 10월). 잉글랜드에서, Chris Kamara(Swindon Town)은 Jim Melrose(Shrewsbury Town)에게 중상을 입힌 죄로 1988년 4월에 유죄 선고를 받고 £1,200 벌금(£250 배상금 별도)에 처해졌다. Kamara는 선수들이 경기장을 나갈 때 Melrose의 광대뼈를 부러뜨렸었다(1988년 1월).

         선수들은 관중들에게서도 또한 공격을 당해왔다. 1902년 9월 버밍엄 법원에서, Arthur Jackson이 Small Health에서 한 경기에서 Robert Davidson(맨체스터 시티)을 폭행한 죄로 별도의 비용과 함께 1 실링의 벌금에 처해졌다. Davidson은 난간에 밀치어서, 턱이 부딪치고 셔츠가 찢어졌다고 진술했다. Jackson의 사과와 함께 Davidson과 그의 클럽은 가벼운 형을 요청했다.

         전쟁 신경증을 겪고 있던 군인 출신의 Robert Grant는, 한 경기에서 Syd Puddefoot(웨스트 햄)을 폭행한 죄로 브렌트포트 즉결재판소에서 £1의 벌금에 처해졌다(1918년 12월). 헐 시티가 크리스탈 팰리스와 경기 중, 'Richardon(헐 시티)이 반칙을 당하자 한 관중이 반칙한 선수를 분명 때리려는 시도로 난간을 넘어왔고, 질서가 회복되는 동안 1분 가량 경기가 일시 중단됐다'(1924-25). 또한 Ron Patterson(노샘프턴)은 레이튼에서 한 관중에게 맞은 후 후반전에 나올 수 없었다(1955년 1월). 주심들은 경기 후 보고서에 그런 사건들의 상세한 내용을 포함했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선수들이 주심으로 인해 위험에 빠진다. 어느 주심은 루들란에서 그가 막 레드 카드를 보인 선수가 주먹으로 때리자 보복을 하여 9개월 동안 정직되었다(1981년 9월). 7년의 경력을 가진 43살의 어느 주심은 노퍽 선데이 리그의 어느 경기에서 규정을 모른다고 비웃음을 당한 뒤에 한 선수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1992년 2월). 그 주심은 곧바로 경기장을 걸어 나갔으며, 그 경기는 포기됐다.

         유사한 사건이 사우스햄트 암스와 Hursbourne Tarrant British Legion과의 Andover & District Sunday League 경기 동안 일어났다(1998년 3월). 주심은 한 선수가 그를 밀었다고 주장하며 그 선수에게 화가 났다. 주심은 몇 차례 반칙한 선수를 때리고 다른 선수들에 의해 끌려 나가야했다. 결국 주심은 자기 자신에게 레드 카드를 보인 뒤 경기장을 떠났고 그 경기는 관중 중 한 명의 주심으로 계속됐다.

         폭행은 범죄이며 민사상의 부당 행위이고, 많은 민사 소송은 배상금 지불로 이어진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주심은 해결의 열쇠가 되는 중립적인 증인이다... 그가 살해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시 유고스라비아의 일부였던) 세르비아의 Sabac에서, 한 선수가 주심을 살해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7명의 다른 선수들이 6개월에서 2년에 이르는 형을 받았다(1952년 11월). 그 주심은 오프사이드로 골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대부분의 주심들은 살아남아서 보고서를 작성한다. 1966년 서퍽에서의 한 사건에서, 주심은 한 골키퍼에게 경고 조치를 하려고 했으나 그 선수는 이름을 알려주기를 거부하며 주심의 옆을 부딪고 걸어가 버렸다. 주심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그가 밀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물으며, 더 이상 다른 것이 없다면 그를 퇴장 조치할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당신이 나를 퇴장시킬 거라면 날 퇴장시킬 이유를 내가 만들어 주지." 라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턱을 맞았다.'

         주심에 대한 대부분의 폭행 사건의 경우에, 경기는 즉각적으로 포기된다. 예를 들면, 스리랑카에서 어느 경기는 한 경험 많은 주심이 Eastern Eagle SC의 한 선수에게 폭행당한 때, 경기 시간 90분에 포기됐다(2002년). 주심이 레드 카드를 보이자, 그 선수는 카드를 잡아채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리고는 주심을 발로 찼다. 다른 선수들도 이 난투에 가담했으며 주심은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했다.

         Lee Campbell(레이튼 타운)을 퇴장 시킨 주심은 Campbell이 그를 주먹으로 때려눕혔을 당시 더욱 강한 자제심을 가졌다(1999년 11월). 10분 동안의 치료를 받은 후 주심은 경기를 재개했으나 진탕으로 병원에 밤새도록 있어야 했다.

         퇴장을 당한 후 보복을 하려했던 선수들도 있다. 1994년 어느 주심은 Notts County Combination의 한 경기에서 올드 로즈의 선수 한 명을 퇴장시켰다. 그 선수는 자신의 자동차에 타서는 주심을 향해 돌진했다. 주심은 안전하게 피했다.

         헐 선데이 리그의 한 경기에서, 여자 주심이 무모한 도전으로 프리킥을 주었다(2003년 4월). 집단 대소동이 일어났고 관중들이 가담했다. 골키퍼 Robert Bunn(Old Bottle)은 후에 일반 폭행으로 6개월간 투옥됐다. 그는 소동 중에 주심을 박치기했었다.

         특별히 우려하는 바는 젊은 선수들에 의한 주심의 수많은 폭행들이다. 아버지와 함께 주심을 폭행한, 13살의 한 선수에게 5년 동안 축구를 금했다(1994년); 15살의 한 선수는 South Ceredigion Junior League의 경기 막판에 주심을 두 번 때린 후 일생동안 축구 대회에서 경기하는 것이 금지되었다(2000년); 15세 이하 Cambridge & District Colts League의 한 경기가 끝날 즈음에 주심이 폭행당했을 때 경찰의 조사가 있었다(2004년).

         Botafogo Youth(브라질)의 선수 두 명이 스웨덴에서 한 경기 중 사건으로 스톡홀름 경찰에 체포됐다(1989년 7월). 한 선수는 주심을 발로 찼고, 다른 한 선수는 머리를 찼다. 같은 달에, 심판에게 중한 폭행을 한 선수나 임원에게는 자동적인 종신 금지를 권고했다.

         프로 선수들이 좋은 본보기가 되지는 못한다. Juanito(레알 마드리드)는 Grasshoppers Zurich에서 어웨이 골로 European Cup 승자진출전에서 패배한 데 격분하여 동독인 주심을 공격했다(1978년 11월). UEFA는 최초에 Juanito를 2년간 모든 유럽 대회에서 금지했으나, 후에 상소에서 1년으로 징계를 감했다.

         기타 유명 선수들이 주심에 대한 다양한 호전적 행동으로 처벌되었었다 - 발로 차기(Venezia의 Maldonado), 머리 부딪치기(웨스트 브롬의 Sinclair), 밀기(크리스탈 팰리스의 Hilaire), 주심의 발 밟기(바르셀로나의 Stoichkov), 주심의 방에 문 걷어차기(웨스트 햄의 Wright), 난폭하게 부딪치기(Hearts의 Mikoliunas), 그리고 주심을 거칠게 움직이기(풀럼의 Gough)

         1995년 West Midlands에 주심에 관한 조사에서, John Williams(Leicester University)는 주심들 중 24.5 퍼센트가 폭행을 그들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 주심들이 4년에 한 번씩 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기대될 수 있다는 통계적 추정을 누군가 한 적이 있었으나, 이와 같은 수치는 Dodge City에서 Dalton Gang과 James Gang과의 경기를 맡은 초심 주심이라면 그리 믿을만한 것은 못 된다.

         더 많은 주심들은, 선수들의 태도와 행위에 대한 항의로써 1996년에 파업을 했던 Halifax 주심들과, Westfield의 선수에게 회원 중 한 명의 턱뼈가 두 조각으로 부러진 후 파업을 했던 Bedfordshire 주심들(2004년 2월)의 전례를 따를 것이다.

         Bedfordshire 사건은 지역 Cup 준결승전의 85분경에 일어났다. Duke Sports(Kempston)가 페널티 킥을 얻었다. 주심이 Westfield의 한 선수에게 물러서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 선수가 공격을 가했다. 그 경기는 포기됐다. 탈의실에서, 부심 중 한 명의 옷이 불탔고, 그의 휴대폰과 차 열쇠가 도난당했다. 경찰은 후에 그 선수를 체포했으며 Westfield 클럽은 10개월간 정지되었다.

         초기 축구 해설자들은 심판들에 대한 폭행의 수가 페널티 킥 규칙의 등장과 함께 증가했다는 것에 주목했다(1891년). 주심들 또한 레드 카드를 낼 때에 공격받기 쉽다. Paolo Di Canio(Sheffield Wednesday)가 퇴장당한 후 주심을 밀어 넘어뜨렸던 사건 이후에, 주심은 선수에게 카드를 낼 때 선수로부터 두 팔 길이만큼 떨어져 있을 것을 권고한다(1998년 9월). 만일 선수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면, 대부분의 주심들은 뒤로 물러나서 그 선수의 동료들이 사이로 들어와서 그 선수를 제지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주심들은 그들의 수첩 보다는 선수를 주시한다. 주심에게 맞서 싸우라고 권하지는 않지만, 자기 방어의 문제도 있다. 주심은 냉정을 유지해야 하고 명확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폭행을 당한다면, 다음의 절차대로 행한다.

    • 의학적 치료 받는다(그리고 그것을 기록한다).

    • 경찰을 부른다.

    • (관중, 부심 등의) 목격자를 확보한다.

    • 기억이 생생한 동안 그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 관계 기관에 보고한다.

    • 사무 변호사와 협의한다.

         이는 또한 관중에 의한 공격에도 적용된다. 경기장 침입은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경기장 폐쇄와 대회 방출의 결과를 낳았다. 경찰에 의해 경기장에서 호위되어 나왔던 (또는 관중들에 의해 가장 가까운 연못으로 호위되었던)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주심 Norman Burtenshaw가 Millwall이 경기장에 침입한 관중들에 의해 때려눕혀졌을 때, 최고 수준의 주심들에 의한 파업이 거의 일어날 뻔했다(1967년 10월). '나는 여러 명의 경찰관의 호위를 받아 경기장을 벗어났다.' 

         Burtneshaw가 그의 경기 보고서에 쓴 글이다. '우리는 관중들에게 난폭하게 떠밀렸다. 그리곤 뒤에서 발을 걸어 넘어졌고, 넘어져 있는 동안 구타를 당했는데, 그 중 한 대는 배에 맞았다.' 주심 Roger Wiseman이 Brimingham에서 폭행당할 때엔 더 많은 폭행이 있었다(1992년 2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와 스토크 시티의 한 경기의 마지막 휘슬이 울렸을 때, Sheila West는 그녀의 두 아들에게 잠시 후 돌아오겠다고 말했다(1969년). 그녀는 경기장으로 달려 들어가서는, 주먹으로 반복하여 때려서 주심을 공격했다. 다섯 명의 경찰들이 그녀를 끌어 떨어뜨렸다. 축구 관중 법령Football Spectators Act 1989[[각주:4]]에 따라 경기장 침입은 형사상 범죄가 되었으나, 블랙번 로버스(1995년 2월), 노츠 카운티(1997년 8월), 그리고 반슬리(1998년 3월)와 같은 곳에서 사건들은 여전히 발생했다. 

Football Spectators Act 1989(ukpga_19890037_en).pdf


         부심들은 때때로 어깨뼈에 눈이 필요하다. 한 부심이 포츠머스와 셰필드 유나이티드간의 한 경기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어느 서포터에게 맞아 정신을 잃었으며, 15분 동안 후반전의 시작이 지연됐다(1998년 1월). 그 팬은 3개월 금고형을 선고받고, 1년간 모든 축구 경기장 입장이 금지되고, 평생 동안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홈 경기장인 Bramall Lane 입장이 금지됐다.

         21살의 미들스브러 팬은 레스터 시티에서 오프사이드 결정 후에 뜨겁게 끓고 있는 Bovril[[각주:5]] 한 컵을 부심의 머리 위로 던졌다. 그 팬은 폭행죄로 유죄 선고를 받고 2개월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그 뿐 아니라 레딩의 한 팬은 캠브리지에서 부심에게 동전들을 던졌음을 자백한 후에 5년 동안 축구 경기의 관전이 금지됐다(2002년 3월).

         부심들은 선수들과 감독들에 의해서도 희생될 수 있다. Kirkup(캠브리지 시티)가 킹스 린과의 경기에서 퇴장됐을 때, 그는 좌절감에 코너플래그를 찼는데, 그 코너플래그가 부심의 얼굴에 맞았다(1999년 11월). 밀월의 감독 Dennis Wise는 카디프에서 퇴장 판정에 대해 너무 강력하게 반응하다 물병을 그저 땅에 던진다는 게 병이 튀어올라 가까이 있던 부심에게 맞았다(2005년 2월). Wise는 즉시 퇴장되었다.

         그 밖에 팀 임원들의 실수도 있었다. FK Atlantas(리투아니아)의 감독은 UEFA Cup의 한 승자진출전의 종반에 Ryal 선수 중 한 명을 공격했다(2005년 7월). 1996년에 Dynamo Moscow의 어느 임원은 경기 후 Dynamo의 탈의실로 주심을 밀어 넣은 뒤 때려서 정신을 잃게 했다고 진술됐다.

         Charlie Mitten은 1950년대에 Sante Fe(콜롬비아) 팀의 선수로 활동한 후 수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미요나리오스Millonarios에서 어느 지역 더비에서 주심은 Santa Fe에게 거의 끝나갈 무렵 말썽이 될 만한 골을 주었다. 두 명의 지역 무장 경관이 주심을 호위하여 경기장을 벗어나게 한 후 탈의실에서 주심을 공격했다. 그 무장 경관들은 미요나리오스 팬들이었다.

         주심이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 심지어 부심들도 아닌 것 같다. 한 부심은 아르헨티나에서 Sarmiento-Independiente의 어느 경기 종반에 주심을 공격했다(1982년 8월). 그 부심은 자신의 오프사이드 신호가 무효 선언된 것에 화가 났었다.

         관중을 공격한 선수에 관해 가장 크게 알려진 사건은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에릭 칸토나(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사건이다(1995년 1월). 상대 선수를 발로 이유로 주심에 의해 퇴장된 칸토나는 경기장 주위를 걸어 탈의실로 가고 있었다. 한 관중이 계단을 달려서 내려와서는 Cantona에게 욕을 했으며, Cantona는 쿵푸 발차기를 날려 보복했다. 칸토나에게는 2주간의 금고형이 선고됐고(후에 120시간의 사회봉사로 감했다), 8개월간 축구가 금지됐으며, FA에 의해 엄격하게 이행됐다. 그 관중은 위협적인 언어와 행위로 유죄 평결이 내려진 후 7일간의 금고형이 선고됐다.

         2003년 9월, 엘 하지 디우프(리버풀)가 Glasgow Sheriff 법원에서 5,000 파운드의 벌금에 처했는데, 화난 상태에서 폭행한 죄를 인정한 뒤였다(2003년 3월). UEFA 징계 위원회는 셀틱 팬들이 Diouf를 자극했었다고 결정한 후에 셀틱에게 2,300 파운드의 벌금을 과했다. 주심이 그 사건을 봤었더라면, 주심은 디우프를 폭력적 행위violent conduct로 퇴장시켰을 것이다.

         2003년 11월, TNS의 홈인 Treflan에서 Rhyl릴의 3-2 승리 후에 릴의 한 팬은 Gary Brabin(Total Network Solutions)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Brabin은 후에 일반 폭행으로 경찰의 주의를 받았다. 두 명의 질링엄 선수들, 켄 프라이즈와 딘 화이트는 리그 승격을 위한 경기 후 터널 안에서 Ray McHale(스윈든 타운)과 스윈든의 트레이너 Wilf Tranter를 폭행한 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1979년 5월).


역주: 관련 규칙

<경기 규칙>

규칙 12. 반칙과 불법 행위

직접 프리킥

선수가 주심에 의해 조심성 없이, 무모하게 또는 과도한 힘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되는 태도로 다음 7개의 반칙 중 어느 한 가지를 범한다면, 직접 프리킥은 상대 팀에게 부여된다.

• 상대 선수를 차거나 또는 차려고 할 때

• 상대 선수를 걸거나 또는 걸려고 할 때

• 상대 선수에게 뛰어 덤벼들었을 때

• 상대 선수를 차징했을 때

• 상대 선수를 때리거나 또는 때리려고 했을 때

• 상대 선수를 밀었을 때

• 상대 선수를 태클했을 때

...


<경기 규칙의 해석과 심판을 위한 지침>

규칙 12. 반칙과 불법 행위

조심성 없이, 무모하게, 과도한 힘을 사용하여

"조심성 없이"는 도전을 하고 있을 때 선수가 주의력 또는 배려의 부족을 나타내는 것 또는 선수가 경계심이 없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 반칙이 조심성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추가적인 징계 처벌은 필요하지 않다.


"무모하게"는 선수가 상대 선수에 대한 위험, 또는 그 위험의 결과를 완전히 무시한 채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 무모한 태도로 플레이한 선수는 경고를 받아야 된다.


"과도한 힘을 사용하여"는 선수가 필요한 힘을 훨씬 초과하여 사용하고 상대 선수에게 부상을 입힐 위험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 과도한 힘을 사용한 선수는 퇴장되어야 한다.


상대 선수를 차징하기

차징 행동은 팔 또는 팔꿈치의 사용 없이 볼을 플레이하는 거리 내에서 신체 접촉을 이용한 공간에 대한 도전이다. 다음의 경우에 상대 선수를 차징하는 것은 위반이다.

• 조심성이 없는 태도로

• 무모한 태도로

• 과도한 힘을 사용하여

 

twitter : @rivvier


* 위의 글은 "Ward's Soccerpedia: The Lore and Laws of the Beautiful Game"의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 모든 주석은 역주입니다. 또한 텍스트를 제외한 모든 영상, 그림, 표는 역주입니다.

* 축구 규칙에 관한, 제가 만나본 책 중 가장 환상적이며 영감과 노력이 넘치는 책입니다.

* 의견이나 관련 기사, 동영상을 아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더욱 멋진 글이 될 것입니다.

 

  1. 역주: http://www.legislation.gov.uk/ukpga/1991/53/ [본문으로]
  2. 역주: http://www.legislation.gov.uk/ukpga/Vict/24-25/100/contents [본문으로]
  3. 역주: p829, 47항 [본문으로]
  4. 역주: http://www.legislation.gov.uk/ukpga/1989/37/pdfs/ukpga_19890037_en.pdf [본문으로]
  5. 역주: 수프 등에 쓰는 (쇠)고기 엑스트랙트(상표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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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ficial Surface 인공 잔디 표면


         1976년 10월에 한 국제 경기가 인공 잔디에서 치러졌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캐나다 대 미국의 경기였다. 그러나 인공 잔디를 허용한다는 항이 규칙 1에 쓰인 것은 2004년이 돼서였다.[[각주:1]] 인공 잔디 표면은 품질 지침과 대회 규정을 만족해야 한다.

         Queen's Park Rangers 퀸즈 파크 레인저스는 1980년대에 인공 잔디 표면에서 경기를 했다. 상대 선수들은 볼이 때때로 너무 높이 튀거나 이상하게 미끄러진다고 말했고, 어떤 선수들은 찰과상을 입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결과는 아마도 그곳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5-5로 비긴 경기일 것이다(1984년 9월).

         인공 잔디 경기장이 1984년에 Feltham Sports Arena에 깔렸고, (1990년에서 1995년까지 Feltham & Hounslow Borough이었던) Feltham FC가 사용했다. Luton Town 루턴 타운, Preston North End 프레스턴 노스 엔드, Oldham Athletic 올덤 애스레틱, Hyde United 하이드 유나이티드 그리고 Stirling Albion 스털링 앨비언 등의 다른 클럽들이 그 선례를 따랐다. 그러나 인공 잔디 경기장들은 때로는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각주:2]Boeing 737은 방문 팀의 감독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들 한다 - 그 둘 모두 they both left Luton whining.

         1986년 7월에 FA는 이른바 'plastic pitches 인공 잔디 경기장' 에서의 컵 시합을 금지했다. 잉글랜드의 축구 리그 또한 점차적인 단계적 축소를 표명했다. 루턴 타운과 올덤 애스레틱은 1991-92 시즌에 천연 잔디로 복귀했으며, 다른 클럽도 마찬가지였다. 클럽들은 1994-95 시즌부터 인공 잔디 경기장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전 경고를 받았었다.[[각주:3]]

         제조업체들이 축구를 하기에 최적의 표면이 무엇인지를 연구함에 따라 디자인이 개선되었다. 그들은 모래 및 고무의 혼합물이 섞인 잔디 같은 섬유를 내놓았다. 2001년에 IFAB는 인공 잔디 표면의 개선과, 품질 표준(예를 들면, FIFA Concept for Artificial Turf FIFA 축구 잔디용 FIFA  품질기준[[각주:4]][[각주:5]]의 인조 잔디 기준과 International Turf Standard 국제 인조 잔디 표준)의 가용을 승인했다. 

[역주]

FIFA Quality Concept for Football Turf.pdf

[역주]

International Artifical Turf Stnadard.pdf


         인공잔디 표면들이 2002 FIFA World Cup™과 올림픽 축구 토너먼트를 위한 예선 경기에 인가되었다. 유럽 전역의 다섯 클럽에서 2년간의 UEFA 시험을 통해 볼의 튀어 오름과 구름, 부상, 그리고 껌과 개의 배설물의 제거 방법 등을 모니터했다. 현재 점점 더 많은 클럽들이 인공 잔디 경기장에서 훈련을 하며 그린란드와 같은 몇몇 나라들에서는 실행 가능한 다른 대안이 없다.


역주: 관련 규칙

<경기 규칙>

규칙 1. 경기장

경기장 표면

대회 규정에 따라 천연잔디 또는 인조잔디 위에서 경기할 수 있다.


인조 잔디의 색상은 반드시 녹색이어야 한다.


FIFA 가맹 협회 대표팀 또는 국제 클럽팀의 공식 경기에서 인조 표면을 사용할 경우, FIFA의 특별 지침을 받지 않았다면, 표면은 축구 잔디용 FIFA 품질 기준 또는 국제 인조잔디 표준의 조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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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주: http://www.fifa.com/classicfootball/history/law/historylaw4.html [본문으로]
  2. 역주: 관련기사 http://www.bbc.co.uk/sport/0/football/17064905 [본문으로]
  3. 역주: 잉글랜드 클럽에서 인공잔디 사용 기간 QPR) 1981-1988 Luton) 1985-1991 Oldham) 1986-1991 Preston) 1986-1994 [본문으로]
  4. 역주: FIFA Quality Concept for Football Turf [본문으로]
  5. 역주: http://www.fifa.com/aboutfifa/organisation/marketing/qualityprogramme/footballturf/index.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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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k-off(킥오프)


         대부분의 면에서, 경기를 재개하기 위한 킥오프의 요구조건들은 전후반 시작 시 킥오프(플레이스킥place-kick)을 위한 요구조건들과 동일하다:

1) 킥을 차는 팀의 선수들은 실제 킥오프 순간에 볼 뒤에 있어야 한다;

2) 주심의 신호가 있어야 한다;

3) 볼은 앞으로 킥 되어야 하고(1886) 그렇지 않았다면 다시 찬다(IFAB 1903);

4) 볼은 움직여야 하며(1997년까지는 볼이 인플레이 되기 전 한 바퀴를 굴러야 했다); 

5) 킥을 차는 선수는 두 번째 선수가 볼을 터치하기까지 다시 터치해서는 안 된다; 

6) 그리고 상대 선수들은 10야드 이내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유일한 차이는 누가 킥오프를 하는가를 결정하는 데 있으며, 전후반의 시작을 위한 킥오프를 교대로 하는 대신에, 골을 허용한 팀이 경기를 재개한다. 축구의 초기 시절에는, 골을 득점한 팀이 킥오프를 했다. Reverend Vidal(원더러스)은 예전에 상대 선수들 사이를 드리블하여 연속으로 세 골을 득점한 적이 있었다(1870년대). 오늘날, 득점한 팀이 킥오프를 하는 유일한 경우는 골이 들어간 직후에 하프타임 호각이 울리고 득점한 팀이 후반전 킥오프를 차게 되는 때이다.

         Athlone Town이 Limerick을 맞아 하프타임 직전에 득점을 한 후, Llimerick이 킥오프를 할 시간이 없었다(1972. 8). Athlone이 후반전 시작 시 킥오프를 하여 Limerick의 볼 터치 없이 킥오프로부터 곧바로 득점했다. Wycombe Wanderers 또한 Peterborough 선수들의 볼 터치 없이 두 골이나 득점했다(2000. 9). Jamie Bates가 한 프리킥으로부터 득점한 후 바로 하프타임 호각이 울렸고, Jermanine McSporran이 후반전 시작 10초 만에 다시 득점했다.

         기상천외한 킥오프 사건 하나가 1984년 10월 Wimbledon에서 발생했다. Alan Cork의 득점으로 홈팀이 앞섰고, 이후 Wimbledon의 볼 터치 없이 다시 득점할 수 있었다. Portsmouth의 킥오프 이후, 볼이 Noel Blake에게 갔고 그가 자신이 골키퍼에게 찬 볼이 골키퍼를 스쳐 지나 골로 들어갔던 것이었다.

         1997년부터 킥오프로부터 직접 골이 득점될 수 있었으며, 이는 이전에는 허용되지 않았었다. 1998년 1월, Daily Telegraph는 지역 축구에서 킥오프로부터 직접 득점했던 선수들의 두 사건을 기록했다. 이 중 하나가 Hatfield Sunday League에서 Mayflower 전에서의 Steve Hill(White Hart)이었다(199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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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Circle 센터 서클


         킥오프를 위한 10 야드 침범 거리는 최초의 1863 FA 규칙에 존재했으나, 1891이 되어서야 10 야드 반경의 센터 서클이 경기장의 표시에 추가됐다. 센터 서클은 Robert J Smith 로버트 스미스가 제안했으므로 한때 '스미스 원'으로 알려졌으며, 그는 1890 FA Cup 결승전의 심판원을 맡았던 FA Council의 회원이었다.

         센터 서클은 현대 축구에서 세 가지 목적을 가진다.

1) 최초의 킥오프나 골 이후 킥오프 때, 상대 선수들이 볼로부터 적어도 10 야드(9.15m) 떨어져 있다고 주심이 확인하는 것을 돕는다.

2) 승부차기 동안 (골키퍼와 키커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위치해야 하는 곳이며

3) '경기의 개시 순간부터 선수들은 상대 선수가 어떤 종류의 프리킥을 찰 때에도 10 야드를 떨어져 있어야 한다'(1913년)는 것을 선수들에게 명기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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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ains 주장  (0) 201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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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ains 주장


         주장은 어떠한 특별한 권리도 가지지 않지만, 팀 동료의 행위에 대한 일부 책임을 질 임무가 있다. 주장은 팀 동료의 식별, 또는 특정한 선수를 진정시키는 경우 도움을 요청받을 수 있다. 때에 따라서 주심은 22 명의 모든 선수를 함께 부르기보다는 두 주장을 함께 불러 그들과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1960 전세필드 FA Cup 준준결승전과 올드햄과 레딩 간의 어느 경기(1966년 12월)가 있다.

         최근에는 주장들이 완장으로 구별된다. 1952 올림픽에서 러시아 팀 주장은 흰색 완장을 찼으나, 완장의 새로운 시대는 (1972년 12월에) 처음으로 완장을 찼던 Billy Bremner가 선도했다. 

Bill Bren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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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서클 Center-Circle  (0) 201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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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bands 완장


Captains(주장)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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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ling 항의하기


         축구의 초기 시절에는, 선수는 위반을 주장해야 했고 게다가 골 마저도 주장해야 했다. 그 시스템은 크리켓과 비슷한데, 크리켓에서는 타자가 'Owzat?' 없이는 아웃이 선언되지 않는다. 다른 점이라면 축구에서는 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핸들링?', '골?' 또는 '페널티킥?'과 같은 호명이 필요했다. 1884 FA Cup 결승전에서, 블랙번 로버스는 퀸즈 파크에게 2-1로 이겼으나, 퀸즈 파크가 항의를 했다면 한 골은 더 얻었을 것이다.

         드디어 주심에게 선수의 항의 없이 판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1896년). 그 이전 5년 동안, 위험한 플레이만이 이에 대한 유일한 예외였다. 1950 년대까지 심판 지침 보면 선수들은 항의가 금지되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선수들이 항의를 해야 했던 시절에는 선수들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에 항의 없이 주심이 판정하는 지금, 선수들은 결코 항의를 멈추지 않는다.

         "우리 볼이에요."

         "밀었잖아요, 주심"

         "주-시-임!"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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